오랜만에 편지를 받았다.
위에 있는 사진과는 달리 꼬깃꼬깃 구부러진 편지봉투에 장밋빛 편지지가 들어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사람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다는게 참 쉽지 않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친구한테, 가족한테 편지를 참 많이도 받았었는데.
오랜만에 받은 편지를 읽고 또 읽다가 편지함에 넣으려고 봤는데,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은 수많은 편지지가 보였다.
기억나는 편지도 있는가 하면 이런 편지를 받았었나 하는 편지도 있었다.
나는 편지란 편지는 다 모아놓는 편이다.
가벼운 마음이든 진지한 마음이든 일단 나에게 글로 메세지를 적어준다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인생에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들의 편지까지 싹 다 모아뒀다.
편지는 차마 버리지 못하겠다.
그 편지를 버리면 내 일부를 버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깟 종이쪼가리 뭐길래 싶으면서도 버리지 못하겠다.
결국 어제 편지함을 정리하다가 내가 받은 편지들을 하나씩 펼쳐봤다.
지금은 더 이상 주고받지 않는 친구와의 손편지.
언제까지나 생일에 손 편지를 주진 않겠지라는 생각은 했지만 성인이 되고 진짜로 받은 적이 없어서 씁쓸하긴 했다.
그래도 그 편지에 감사했다.
그 시절 그 친구와 어떤 감정을 공유했는지 추억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됐기에.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추억들을 편지라는 매개체로 인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러다가 풀칠이 뜯어져 있지도 않은 편지봉투를 발견했다.
풀칠을 뜯으니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런 편지는 받은 기억이 없었는데.
안에는 정확히 내 취향의 깔끔한 편지지에 빼곡히 적어 내려 간 글들이 보였다.
내가 나에게 쓴 편지였다.
17살의 내가 19살의 나에게 쓴 편지였다.
편지는 쓴 시각, 어떤 생각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
그러고선 질문을 쏟아부었다.
지금이 그리운지, 아니면 지금이 그립지도 않을 만큼 잘하고 있는지.
그리고 19살의 나에게 원하는 것을 잔뜩 썼다. 잔소리처럼.
편지내용을 요약하자면 제발 후회할 만한 짓만 하지 말라고 거의 빌듯이 써놨다.
17살의 나는 내가 소중한 시기를 낭비해 버릴까 봐 걱정이 많은 눈치였다.
이 편지를 잊은 채 5년이 지나고 22살이 되어서야 읽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 비교적 평화롭게 살고 있는 내가 과거의 걱정 많은 나의 편지를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런 시기도 있었구나 싶었다.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시절의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낸 기분.
기록의 힘이라고 느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기록하며 살아간다.
오늘처럼 편지로, 누군가는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또는 일기로. 요즘은 인스타그램 같은 sns 게시물로 '나'를 기록한다.
이 기록한다는 것은 삶의 중요한 작용이라고 보인다.
나를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
사실 모르는 게 아니라 잊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이 분야에 뛰어들었구나. 내가 이런 마음으로 이 전공을 선택했구나.
머릿속으로만 했던 생각을 구현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나 같은 경우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을 글로써 구현한다.
눈에 보이고 정리된 글로 어렴풋했던 것을 어떠한 구체적인 모양새로 잡는다.
더 확실해진 나의 생각을 마주 볼 수 있다.
이 기록들이 모이고 모여서 당신의 삶의 오답노트가 된다. 길잡이가 된다. 중요한 선택을 할 때 근거가 된다.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꾸준히 기록한다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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